시사월드뉴스

시와 함께하는 , 상처에 관하여 - 김수현

창작시 열여덟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4/27 [13:15]

시와 함께하는 , 상처에 관하여 - 김수현

창작시 열여덟
김수현 기자 | 입력 : 2024/04/27 [13:15]

 

 


상처에 관하여

 

 

누구나 한평생을 살아 나가며

몇 개의 흔적을

몸에 남기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손가락에, 또 어떤 이는 

손금이나 손등에

유년의 추억으로 무늬진 상처의 흔적을

또 다른 이는 이마 위에, 혹은 얼굴 한구석에

좀더 뚜렷하고 보다 상징적인

흉자리를 부끄러움 속에 드러내고

어떤 이는 생명을 담보한 수술자국을

옷 속 깊히 갈무리해 두고, 수명을 연장해 준

소중한 흉터를 자랑스럽게 더듬는다

 

생채기나 상처나 수술자국이나

문신이나 다들

지난 시대 한 사람의 '거죽인생'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시공을 초월한 개인의 역사적 박물관

 

세월의 강물에 씻겨 지고 닳아져서

이제는 희미한 형태로

지워진 존재, 과거로 정의되어지는

한 사람의 연대기, 인생길이

수놓아진 상처의 편린들

 

생의 옹이로 단단히 마름질 된 아주 오래전 상처의 흔적들

 

새살 돋아 감쪽같이

세월의 성형으로 봉합된 흉터에도

아찔한 한때의 기록은 깊히 각인되어

있다

 

흉 진 자리는 지난날의 기록이며

오늘의 나를 나답게 이름 매겨 주는

작은 삶의 간이역

순간순간의 현실을 견디게 해 준 상처의 조각들은

과거를 현재로 미래로 밀어 주는 힘 

곪아 문드러진 상처에서

싹터 올라오는 삶의 의욕, 또는 한때의

살아 있음에 대한 뼈저리는 자각

 

내 손가락에 난 아주 작은 생채기도

남의 다리 부러지는 고통보다

나에게는 더없이 크고

내 마음의 깊고 넘너른 속병보다

다른 사람의 얼굴에 생긴 멍자국을

더 비웃는 내가

나는 언제나 슬프다

 

하나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에 의해 지워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는 거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한 피부는

밋밋한 생을 담은 사기그릇과도 같지

상처가 어제를 내일로 끌고가는 수레가

될 때도 있으리니

더러는 두서너 개의 아픔을 만들거나

아니면, 마음 한구석에 한두 개의 상흔을 넣어 두고

살아갈 일이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포토뉴스
이동
메인사진
배우 김소연, 강렬하고 그윽한 눈빛이 매력적인 화보 촬영 !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