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낫
동학운동 그해, 생대 잘라 죽창 깍던 농민군의 정성으로 잡초는 쳐내어 밑거름 되게 하고 잡것은 잡것대로 오사리잡것 되게 하고 불의의 싹은 밑동부터 싹뚝 베어 버리는 내 마음에 낫 한 자루 품고 살아가고 싶다.
황토 아궁이 관솔불에 달궈지고 대물린 눈물의 노동 대장장이 恨으로 담금질되고, 한평생 소작농 울 아비 설움을 섞어 우물가 실팍한 숫돌에 갈고 갈아 빳빳한 창호지도 단박에 베어 버릴 시퍼런 날 세운 그런 조선낫이 되고 싶다.
억새만 베어도 날이 나가는 연약한 왜낫이 아니라 졸참나무 찍어도 끄떡없는 손잡이 뭉툭한 초승달 닮은 조선낫 풀은 풀대로 꼴이 되게 하고 나무는 나무대로 땔감이 되게 하고 나락은 나락대로 밥이 되게 하는 그런 조선낫이 되고 싶다.
쨍쨍한 오뉴월 땡볕 앞에 보릿고개 넘어가는 목 타는 보리밭 앞에 당당히 서는 조선낫의 눈 시린 반짝임처럼 이제껏 헛것을 살았던 살아서 헛것이었던 빈손의 삶을 잘라내고 잡풀이 무성한 현실의 논배미를 가꾸어갈 한 자루의 조선낫을 단단히 말아 쥐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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