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가는 길
꽃샘 추위가 마지막 눈을 동반하고 한차례 휩쓸며 지나간 산간 僻村의 작은 들판을 하얀 염소 닮은 낡은 비닐하우스 몇 동이 덩그러이 지키고 있네
옛날, 예도옛적부터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질기디 질긴 목숨줄 연명해 준 보릿고개의 파릇파릇한 꿈이 자라는 작디작은 보리 논배미가 제법 넉넉한 품으로 자리한 곳
백양사 오르는 길에서 자꾸만 헛발을 내딛는 것은 버려진 땅 풀숲에 시선을 뺏긴 탓인가 허방을 밟고 살아온 습성 때문인가 저 멀리 가을걷이의 흔적으로 남은 벼 그루터기 위에 언듯언뜻 하얗게 비치는 殘雪에 발이 시리다 제법 가벼워진 초봄의 바람에도 흔들리는 弱視의 동공으로 와서 박힌 밭갈이하는 늙은 농부의 굽은 등줄기
이 길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고 누구처럼 화엄의 경지에 다다르 지는 못하겠지만 큰길 끝나는 곳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산짐승들이 길내 놓은 오솔길 걷다가 돌부리에 차인 발부리 어루만지며 고개 들어 올리면 저만치 산등성이 너럭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늠름한 산양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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