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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백양사 가는 길 - 김수현

창작시 열다섯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4/19 [22:00]

(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백양사 가는 길 - 김수현

창작시 열다섯
김수현 기자 | 입력 : 2024/04/19 [22:00]

 



백양사 가는 길

 

꽃샘 추위가 마지막 눈을 동반하고

한차례 휩쓸며 지나간

산간 僻村의 작은 들판을 

하얀 염소 닮은 낡은 비닐하우스

몇 동이 덩그러이 지키고 있네

 

옛날, 예도옛적부터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질기디 질긴 목숨줄 연명해

보릿고개의 파릇파릇한 꿈이 자라는

작디작은 보리 논배미가

제법 넉넉한 품으로 자리한 곳

 

백양사 오르는 길에서

자꾸만 헛발을 내딛는 것은 

버려진 땅 풀숲에 시선을 뺏긴 탓인가 

허방을 밟고 살아온 습성 때문인가

저 멀리 가을걷이의 흔적으로 남은

벼 그루터기 위에

언듯언뜻 하얗게 비치는 殘雪에

발이 시리다

제법 가벼워진 초봄의 바람에도 흔들리는

弱視의 동공으로 와서 박힌

밭갈이하는 늙은 농부의 굽은 등줄기  

 

이 길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고

누구처럼 화엄의 경지에 다다르 지는 못하겠지만

큰길 끝나는 곳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산짐승들이 길내 놓은 오솔길 걷다가

돌부리에 차인 발부리 어루만지며

고개 들어 올리면

저만치 산등성이 너럭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늠름한 산양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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