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 정 씨는 재벌이다 그냥 흔한 구두닦이가 아니라 구두병원 구두수선학원을 경영하는 회장님이다, 오지랖이 아주 넓은 옷을 입고 오늘도 아침보다 먼저 3평 남짓한 그룹 사옥의 문을 손수 열고 하루를 예열하는 커피 물을 데운다 구두닦이 정 회장은, 봉지커피는 반짝이구두 같아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원두커피를 내려서 큰 컵에 가득 담아 구둣방 문턱에 천연덕스럽게 걸터앉아 아침이 오는 거리를 무심히 내려다보며 세상사에 닳고닳은 구두 대하듯 뜨거운 블랙커피를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구두의 광택보다는 만져지는 촉각에 맡아지는 냄새에, 떨어지는 구두약의 부스러기에 연연한 세월 어디 닦아야 할 것이 낡은 구두뿐이겠는가 한 사람의 가장 낮은 데서 그 사람의 전부를 떠받치는 구두를 수선하고 광을 내듯 누군가는 세상의 밑바탕을 손질하고 세상의 가장 작은 모퉁이를 빛나게 닦는 구두닦이의 손끝 같은 날래고 맵차고 정성 어린 손과 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세상을 닦는 날을 꿈꾸는 구두닦이 정 씨는 인생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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