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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가을바다 - 김수현

창작시 열여섯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4/19 [22:01]

(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가을바다 - 김수현

창작시 열여섯
김수현 기자 | 입력 : 2024/04/19 [22:01]

 



가을바다

 

 

바다는 무슨 빛깔로 가을을 빚고 있을까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해 매달고 온

먼지 켜켜이 내려앉은 뭍의 질긴 그림자

바닷물에 드리우다

갈매기 한 마리 솟구쳐 올라

異邦語 몇 마디 남겨 두고

건너편 이름 모를 섬으로 유유히 날아간다

뒤미처 삽화처럼 노을에 취한 물결 가르며

느릿느릿 다가오는 통통배 한 척의

툴툴대는 넋두리에

속내 깊은 바다는 대꾸가 없다

몸집 좋은 바다는 꿈적도 않는다

익숙하게 해면을 스치는

해산한 아낙처럼 가뿐한 해풍은

생활의 먼지 덕지덕지 낀 머리카락 몇 점 건드리며

난바다로 간다, 곧

이 바람은 朔風이 되어 돌아와

삶의 때가 더께더께로 얹힌 어부에게

묵직한 생활의 무게가 실린 疼痛을 주리라

 

몸은 이미 바닷물에 적셨는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저를 쓸고 다니는

쓰레그물의 그물코처럼 이어지는 想念

가끔씩, 정말 가끔은 태풍 때 해변의 바위에

온몸을 밀어붙이는, 부딪혀 하얀 泡沫로

아프게 되살아나는 파도처럼 나이에 혹은

이름에 값하는 눈물도 한두 방울 흘리고

바다의 피부보다 더 실한 믿음으로 만져지는

실팍한 동백나무 한 그루

언제나 五感에 의지하는

짧은 신념이나 진리를 썰물에 흘려보네

몸피를 작게 하고 싶다

 

바다에 어둠이 풀리면

썰물처럼 바삐 섬을 빠져나가는

뭇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딱, 딱, 딱ㆍㆍㆍ

식어 버린 가슴으로 진하게 박혀온다

그 소리에 하나의 발자국을 더한다

 

가을바다는 무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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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사 2024/04/20 [15:47] 수정 | 삭제
  • 여수 가을바다 풍경 시 멋져부러요 ㅎㅎ